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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리 (LiveRe)/댓글로 세상보기

댓글로 세상보기(22) - 인터넷이 북한을 바꿀 수 있을까?


<댓글로 세상보기>는 시지온이 '소셜'과 '댓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국내외 인터넷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외부와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해외 사례들의 소개와 라이브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인터넷이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지온만의 관점과 통찰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댓글로 세상보기 (22)

인터넷이 북한을 바꿀 수 있을까?


2013년 1월 7일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와 빌 리처드슨 전(前)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이 북한에 도착했다. 에릭 슈미트 및 방북단은 슈미트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북한에 방문하는 것이라 공표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어쨌든,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의 수장이 세계 최대의 인터넷 통제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구글이 전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마켓쉐어(Netmarketshare)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으로 구글은 인터넷의 제1관문인 글로벌 검색엔진 시장의 83.85%를 차지한다. 북한이 인터넷 통제국가인 것 역시 두말할 여지 없다. 뉴욕 타임즈의 톰 젤러(Tom Zeller) 기자는 2006년 10월 23일에 발행된 기사에서 “인터넷에 블랙홀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일 것이다”(The Internet Black Hole That Is North Korea)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에도 인터넷이 가능하지만 극소수의 엘리트층에게만 가능하다. 이웃한 권위주의 국가 중국에 현재 4억명 이상의 인터넷 이용자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흔히들 중국을 인터넷 통제국가의 1순위로 꼽지만, 인터넷을 제대로 도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북한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둘의 만남이 극적인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개방의 첨단(尖端)과 통제의 궁극(窮極)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Guillaume Paumier의 사진. (CC BY-NC-SA)>

그리고 사실 구글은 북한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적 인프라 제공이 잘 되지 않는 소위 취약국가(fragile state)를 그들의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단적인 예로 구글의 공공정책 관련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구글 아이디어스(Google Ideas)에 가보면 구글 아이디어의 관심 주제 셋 중에 하나로 ‘취약 국가’를 꼽고 있다. 

그리고 이 구글 아이디어스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제어드 코헨(Jared Cohen)이 이번 방북행에도 합류했다. 코헨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클린튼 국무장관의 보조관이었으며, 인터넷 자유(Internet freedom)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 정부의 외교 독트린인 ‘21세기 외교정책’(21st statecraft)의 골격을 만든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코헨은 에릭 슈미트와 ‘새로운 디지털 시대: 개인, 국가, 그리고 비즈니스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The New Digital Age: Reshaping the Future of People, Nations and Business)란 책을 공저했고, 해당 책은 2013년 4월 23일 출판 예정에 있다. 따라서 이번 에릭 슈미트의 방북이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순수한 개인 자격이라고 믿기 어려운 부분은 많다. 적어도 구글의 정책 활동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글이 북한에 간다고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구글 아이디어스의 홈페이지를 통해 보면 구글이 ‘취약국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은 ‘법치(法治), 필수재와 기본적 사회적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사회에 모바일 기술을 통해서 ‘교육, 의료 등 인도적 영역’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구글이 북한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모바일 서비스를 통한 국제개발사업일 것이라 추정한다면 이런 사업이 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발표 자료를 보면 1999~2004년 동안 가장 많이 성장한 모바일 시장이 아프리카다. 이 시기 성장률은 58.2%였다. 그 뒤를 잇는 곳은 아시아로 34.3%다. 그곳에는 우리 선진 시장에서 볼 때도 혁신적인 것들이 많다. 모바일을 이용한 소액금융(micro‐finance), 소액보험(micro‐insurance), 소기업(micro‐enterprise), 원거리교육(m‐learning), 헬스케어(m‐healthcare) 등이 그 것이다. 구글이 북한에 대해 꿈을 갖고 있다면 이런 꿈일 것이다. 그라민폰(Grameenphone)으로 방글라데쉬의 모바일을 통한 경제 발전을 이끌고 있는 이크발 콰디르(Iqbal Quadir)는 2005년 BBC와 행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려면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연결성은 상호 의존을 가능하게 만들고 결국엔 전문화와 생산성 향상을 이끈다.”라고 답한 바 있다. 모바일 개발론은 구글의 전세계 정보를 조직해 개인이 보편적 접근권을 갖게 한다는 비전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물론 북한도 구글이 이니셔티브하는 모바일 보급을 통해서 사회의 연결화, 전문화, 생상성 향상을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다시 북한이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국가 중 하나로 철저하게 외부 정보가 내부로 유입되는 것, 그리고 내부 정부가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비인도적 수단까지 강구하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런 기술을 통한 장미빛 전망은 상당 부분 나이브하다.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2011년 11월 21일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대비 전세계 평균 모바일 가입자 비율은 97.96%다. 신흥, 개발도상국 시장(emerging and developing economies)의 인구 대비 평균 모바일 가입자 비율도 91.64%에 달한다. 작년 아랍의 봄, 아랍의 민주화로 전세계를 뜨겁게 한 중동과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인구 대비 평균 모바일 가입자 비율도 109.43%에 이른다. 아시아의 개발도상국 평균도 81.41%다. 이에 비해 북한은 보수적으로는 1%, 많이 잡아도 인구의 4% 정도밖에 모바일 이용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모바일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통해 밀수입된 제품들을 쓴다. 달리 말해 북한은 이웃 국가나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국가들에 비교해서도 훨씬 더 극단적인 통제를 행하고 있고, 그러한 통치 방식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 국가다. 

그리고 여기에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배경도 있다. 북한은 1994년 대기근 이후 정상적인 배급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탈북자가 속출하는 중국과 국경 지역은 상대적으로 기근의 피해를 더 심하게 입은 곳이다. 이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생적인 암거래 시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 내에서 북한은 주체사상에 선군정책을 더해 군의 통제를 강화했다. 나아가 2000년대 중반 거시경제를 조작해 화폐가치를 하락시켰고 2009년에 행한 화폐개혁으로 중산층의 도약의 뿌리를 뽑았다. 시민이 당의 배급 외에 새로운 먹고 살 길을 찾고, 국가에 덜 의존하게 될수록,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단체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북한 엘리트층 내에서는 체제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북한이 최근 미사일 발사 이후 현재 상황에서 자신들의 오래 된 우선순위를 바꾸어 사람들의 상호 소통, 집단 행동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모바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살롱(Salon)이 2013년 1월 1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2년 10월 적의 이념적, 문화적 공세에 적극 대응할 것을 강조했는데, 이 대상은 구체적으로 중국에서 밀수입되는 한류 DVD, 모바일을 가리킨다. 오랫동안 체제 순응을 강요당한 북한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건 심리적로나, 실제적으로나 쉽지 않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말을 무시하고 한류 DVD를 보는 것, 모바일을 사용하는 것(모두 외부 세계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부터가 일상에서의 중요한 반란일 수 있다. 그 점을 김정은은 주목하고 이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런 북한에게 미국 국무부도 공식으로 후원하지 않는 슈미트 회장의 방북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샌디에고 캠퍼스의 북한 전문가 스테판 해가드(Stephan Haggard)는 그의 팀블로그에서 이에 대해 시니컬하게 평했다. 해가드 교수는 김정은이 에릭 슈미트가 구글이 얼마나 정보 개방에 힘을 쓰는 지에 대한 파워포인트 발표를 들으면 과연 얼마나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지, 그리고 북한에 비해서는 훨씬 더 개방적인 사회인 중국에서 구글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감안할 때 과연 북한에서는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슈미트 회장의 방북에 대한 분석은 구글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기 위함도, 기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을 간과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그 못지 않게 그 기술이 적용되는 해당 사회의 사회적 조건, 구체적으로 해당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과 그 못지 않게 그 기술을 제한하고 싶은 사람들의 인센티브와 경쟁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가슴 벅찬 꿈도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희망은 강철로 된 무지개다.  



2013.1.9 | 전략경영팀 김재연 전략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