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지온 컨설팅세일즈팀의 김민우입니다.

바야흐로 정부 3.0 시대입니다. 2013년 6월에 발표된 정부 3.0은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이라는 멋진 가치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에도 드디어 소통의 새 바람이 불 것만 같은 이 느낌… 예전에도 몇 번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를 접어야 했던 이 익숙한 느낌...

사람과 사회, 자연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시지온의 일원으로서 저는 일말의 기대, 그리고 약간의 우려와 불안감을 가지고 정부 3.0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하는 방관자가 되기보다는 제 생각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시지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모자란 식견이지만 시지온 블로그에 공식적으로 글을 연재해 보기로 했습니다. 열린정부가 워낙 범위가 넓은 주제인 만큼 야금야금, 조금씩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도중 사실관계가 틀린 점을 발견하신다든지, 아니면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을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블로그는 여러분의 댓글을 먹고 자라납니다.


자, 그러면 첫번째 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정부 3.0 시대의 개막, 그리고 우려.

2013년 6월, 박근혜 정부는 핵심 추진 사업 중 하나인 '정부 3.0 추진 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3.0은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의 네 가지 중심 가치를 바탕으로 정부의 혁신을 이끌어내겠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2013년 9월 초) 각급 공공기관은 일제히 직원 교육 행사와 토론회를 열고, 일부 빠른 곳은 세부 추진계획까지 발표하는 등 정부 3.0을 향해서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요즘 업무로 인해 정부기관 관계자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정부 3.0에 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부 3.0이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파스텔톤 산뜻한 정부 3.0의 톱니바퀴들은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아직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부 3.0이 과연 확고한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진행될 사업인지, 아니면 미사여구로 점철된 구호만 가득한 전시행정이 될지 답을 내리기 어려워집니다. 아직도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대다수는 액티브엑스 플러그인을 설치하라는 팝업창이 뜨기 일쑤이며, 국제표준을 무시하는 샵메일 등의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 3.0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머쓱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정부 3.0이 뭐가 달라졌나구요? 말하는 사람이 달라졌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포기한 액티브엑스, 더이상은 naver...)

정부 3.0에서는 공공정보의 개방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공공정보의 개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이익과 효과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고위급 의사결정권자에서부터 실무자들까지 모두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한 정부기관 웹사이트에서 발견한 파일 하나는 아직 정부 3.0이 그 정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픈포맷과 상용포맷, 접근성에 대한 장벽

2013년 9월 2일, 국토교통부에서는 발빠르게 정부 3.0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아마 각급 정부기관 중 최초로 발표한 것일텐데, 이 추진계획 문서를 읽기도 전에 저는 한가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 3.0을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정보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내용을 읽기도 전에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이 링크에서 '정부3.0 추진계획 설명자료'를 다운로드 해 보면 여러분도 금방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맥 사용자한테 HWP 같은 걸 끼얹나?)

몇몇 분들은 파일을 다운로드할 때 한숨과 함께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실테지만, 한글(HWP) 파일에 익숙하신 많은 분들은 '이게 왜 문제가 되는데?'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네,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HWP 파일과 같은 상용포맷은 정보 접근성을 저해하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접근성을 위해서는 오픈포맷 파일 형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픈포맷이나 상용포맷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오픈포맷: 특정 소프트웨어나 플랫폼을 사용해야만 작성하고 읽을 수 있는 포맷이 아닌,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성하고 읽을 수 있는 파일 형식입니다. 가장 단적으로는 플레인 텍스트(TXT) 파일을 들 수 있는데, 플레인 텍스트 파일은 윈도우즈, 맥, 리눅스, 안드로이드, iOS 등 플랫폼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포함된 텍스트 편집기나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작성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오픈포맷은 파일을 작성하고 읽기 위한 세부 규격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 이 규격을 가지고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픈포맷의 예: 플레인 텍스트, HTML, RTF, PDF (문서), CSV (스프레드시트), JPEG, PNG(이미지), OGG, FLAC(사운드)

상용포맷: 오픈포맷과 달리, HWP 파일이나 MS 워드(DOC) 파일과 같은 상용포맷은 특정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제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정확하고 완벽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상용포맷은 공공성을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영리기업인 소프트웨어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개발되었기 때문에 공공정보를 상용포맷을 통해 공개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상용포맷의 예: HWP(각주 참고), DOC, PPT, XLS

(우리 모두 오픈포맷을 써 보아요. 이미지 출처: http://www.april.org/en/open-formats)


공공정보에 상용포맷을 사용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 

(1) 특정 플랫폼에 종속됨: 일부 시민들이 공공정보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시민들이 공공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를 들어 상용포맷 파일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특정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나온 상용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용 프로그램들, 모든 운영체제(OS)에 다 제공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다수에 속하는 윈도우즈 사용자들은 쉽게 프로그램을 구할 수 있지만 소수에 속하는 맥OS 또는 리눅스 사용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개발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른 말로, 상용포맷은 특정 플랫폼에 종속된 파일 형식이며, 결국 특정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공정보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셈입니다.

영리기업은 소수에 불과한 사용자들을 위해서 굳이 인력과 시간을 들여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그것이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면 누구도 강요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정보에서는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많은 양의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도, 특정 플랫폼 사용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스마트폰, 태블릿을 넘어서 스마트 안경, 스마트 시계까지 각종 기기와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가 다가오는 만큼 공공정보를 모든 플랫폼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고려가 필요합니다.

(사과, 창문, 펭귄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2) 파일 형식의 업그레이드: 상용 소프트웨어를 보유했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상용포맷을 읽기 위해 큰맘먹고 윈도우즈와 상용 소프트웨어를 구매했다고 해도, 정보 접근성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전략적으로 데이터의 형식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합니다. 새 형식으로 만들어진 파일이 구버전 어플리케이션에서는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사용자들은 새 형식의 파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새 버전의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해야 합니다. 이렇듯 영리기업인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잠금효과(lock-in effect)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기관이 상용포맷을 이용함으로 인해 영리기업의 잠금효과에 장단을 맞춰 준다면 문제가 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시민들에게 특정 기업의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도록 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 기관들이 오픈포맷을 비롯한 정보 접근성의 원칙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추억의 윈도우즈 95용 한글 3.0b. 이후로 10번의 버전업이 있었고, 호환성 문제도 심심치 않게 불거졌습니다. )


(3) 특정 기업의 독점력 강화: 정부가 특정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이 웹사이트에 공공정보를 상용포맷으로 업로드합니다. 이는 암묵적으로 시민들에게 "이 정보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상용 프로그램을 구매해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정보가 필요한 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상용 프로그램을 구매해야 하며, 결국 이 상용 프로그램은 비공식적으로 독점력을 가지게 됩니다. 정부가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으로 나서서 특정 기업의 독점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경쟁을 저해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에도 해를 끼치게 됩니다.

(정부는 독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해야지, 독점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서는 곤란합니다)

만약 기업이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더이상 개발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거나, 기업이 부도가 나서 더이상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해당 포맷으로 만들어진 모든 파일들은 더이상 사용할 수 없는 파일이 됩니다. 공공 정보의 안정성이 특정 기업의 이익 혹은 존속에 좌우되는 상황은 누구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결국 기본의 문제
 
2009년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열린정부 지침(Open Government Directive)은 정부 기관들은 가능한 한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오픈포맷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래야만 시민들이 제한 없이 공공정보를 열람 및 활용할 수 있고, 상용포맷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의 열린정부 지침, 11쪽짜리 문서에 공공정보는 '오픈포맷'이어야 한다는 문구가 여덟 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발표한 정부 3.0 추진 기본계획에서는 오픈포맷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책을 계획하면서 아마도 미국의 열린정부 이니셔티브를 참고했을텐데, 왜 이런 기본적인 부분이 빠진 것일까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공공정보의 개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정부 3.0. 조금 더 탄탄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면 어땠을까요? 
'창조경제 지원'이라는 문구가 대뇌 전두엽을 타고 올라와 불안감을 자극합니다)

정부 3.0이 중요한 중장기 사업이고 그 중에서도 공공정보의 개방과 공유가 중심 과제인 만큼, 웹에 대한 이해, 정보 공개와 접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철학과 원칙부터 명확하게 세웠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부 3.0 추진계획에는 그런 철학과 원칙이 부재한 자리에 '빅데이터', '클라우드', '스마트', '유비쿼터스'와 같이 요즘 유행하는 단어들이 가득하고, 데이터를 공개해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장밋빛 미래만 그려져 있습니다. 자칫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거액의 예산으로 기술 도입만 하고 마는것이 아닐지, 정부기관과 거래하는 몇몇 솔루션 업체들만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정부 3.0이 단순히 '일자리 창출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부수적인 사업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부운영 패러다임이 되기 위해서는 기반 철학과 원칙이 명확히 세워져야 합니다. 정부의 모든 부서, 의사결정권자에서부터 실무자들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그 철학과 원칙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정책에서 엇박자가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금 정부 3.0은 똑바로 서기 전부터 달리기를 하려는 위태위태한 모습입니다.

2013년 9월 9일



인터넷의 미덕이죠. 세줄요약 드...드리겠습니다.


1. 정부 3.0이 튼튼한 기반 철학과 원칙을 가진 사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공공정보가 왜 오픈포맷으로 공개되어야 하는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3.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정보 접근성이 향상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각주: 한글과컴퓨터에서는 지난 2010년 HWP 파일 형식을 공개했습니다. (참고기사: HWP 파일 형식 ‘무엇을, 어떻게, 왜’ 공개했나, 블로터닷넷) 그러나 한글과컴퓨터에서 공개한 파일규격 문서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글과컴퓨터 관계자 스스로도 '이를 가져다 제대로 HWP 문서를 보여주는 일은 아직도 기술과 노하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만치 않다고 보는' 상황이기 때문에 HWP는 불완전 공개된 파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김민우 (@minuetweet)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교환학생으로 1년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공부하면서 네트워크의 힘, 공동체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의 형성이 많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믿습니다. IT 기술이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시지온에서 일하고 있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는 청춘입니다. 매년 여름 락페스티벌에서 캠핑을 즐깁니다.


Posted by 시지온 CIZ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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