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세상보기(12) - 한국은 IT 강국인가?
<댓글로 세상보기>는 시지온이 ‘소셜’과 ‘댓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국내외 인터넷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외부와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해외 사례들의 소개와 라이브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인터넷이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지온만의 관점과 통찰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댓글로 세상보기 (12)
한국은 IT 강국인가?
간단한 예로, 비슷한 통계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를 보면, 2000년 기준으로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2000만, 미국은 1억 2천만 정도 된다. 10년이 지난 후, 양국 모두 인터넷 이용자가 200%가 증가하여,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가 4000만이 될 때, 미국은 2억 2천만에 가깝게 됐다. 달리 말하면, 2010년 기준으로 시장 크기만 놓고 보면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시장은 1인당 구매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 시장의 18%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는 29000달러 미국은 47000 달러 이므로 그 차이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즉, 동일한 인터넷 보급률을 가지더라도 양국이 가지는 인터넷 시장 크기는 현격히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인터넷을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평가해보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국내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 받는 舊정보통신부 시절의 그림자가 보인다. 당시 정부가 자신들이 설치한 인터넷의 자유로운 개발과 이용에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규제 장벽을 지속적으로 삽입해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명제(정식 명칭: 제한적 본인 확인제), 공인인증 의무제, 국산 모바일 플랫폼(WIPI) 같은 경우가 이의 좋은 사례들이다.
공인인증 의무제의 규제 효과
공인인증 의무제의 효과도 만만치 않다. 오픈웹 운동을 펼치는 김기창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융감독원의 “인증서 기술규격 왜곡”이란 오류와 행정안전부란 “인증서 사용 강제”란 오류의 종합으로 탄생한 공인인증 의무제는 전세계의 유례 없는 인터넷 결제 환경을 만들었다. 공인인증 의무제 덕분에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결제하려고만 하면 인증서를 설치해야 하게 됐다. 그리고 인증서만 설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증서를 인식하기 위해서 서버 보안을 확인할 수도 없는 단계에서 부가프로그램 설치도 의무가 됐다. 비유적으로 말해, 우리 인터넷 보안 환경은 자문쇠를 달기 위해 문에 구멍을 뚫어놓은 상황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SSL(보안서버인증서)과 다르게 공인인증서는 개인의 장치에 설치되는 보안 기술이란 점이다. 즉, 보안 책임이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측에 있게 됐고, 따라서 결제 관련 서비스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이용자의 비용이 증가하는, 고비용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지게 됐다.
나아가, 그런 비용을 들이고도 공인인증서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안전한 기술은 못 된다. 공인인증서의 핵심은 장치를 보안하는 것에 있는데, 해당 장치가 위조되는 경우, 전자서명 같은 방식을 사용해도 그것을 기술적으로 막기가 힘든 데다가, 다양한 금융 서비스에 같은 키를 사용하기 때문에, 피싱(pishing)에 취약하다. 그래서 최근 은행권에서도 OTP(일회용 비밀번호)와 같은 2차적 보안 기술을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에서 지적한 공인인증서가 개인 이용자에게 보안 책임을 씌우는 구조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서버단에서 보안이 이루어지게 되면, 운영체제가 무엇인지, 어떤 웹브라우저를 쓰는 지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장치단에서 보안이 이루어지게 되면, 운영체제, 웹브라우저 등의 조건에 제약을 받게 되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공인인증서는 MS의 윈도우 운영체제와 인터넷 익스플로러(IE)라는 조건을 이용자에게 강제하고, 그 조건을 따르지 않는 이용자의 금융 결제 권리를 제한한다. 즉, 공인인증서라는 하나의 강제 수단 채택이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 선택 강제라는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국내 개발 환경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국산 모바일 플랫폼(WIPI)의 규제 효과
정통부의 마지막 선물인 국산 모바일 플랫폼(WIPI)도 못지 않다. 2008년에 한국이 전세계에서 85번째로 아이폰을 도입하는 데 획기적인 공을 세운 WIPI는 사실 아이폰이 도입되면 데이터 요금제 수익이 감소할 것을 염려한 이통사의 수익 보전에 이득이었다. 방송통신위의 최근 망 중립성 기준안 발표를 통해 이통사에 카카오의 보이스톡과 같은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에 이통사가 트래픽 차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합리적 망 관리’란 명목으로 준 것도 이 같은 권위 있는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정통부 시절에 비해서 부서간 의견 조율 등의 문제로 행정 절차가 더 복잡해진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위에서 본 것처럼 규제당국의 규제대상에 의한 포획이다. ICT 산업을 떠나서 통상적으로 25%의 혁신이 스타트업과 같은 새로운 시장 진입자에게서, 75%의 혁신이 기존 산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1/4밖에 되지 않을지라도, 새로운 시장 진입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들은 점진적 혁신으로는 수익을 크게 낼 수가 없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creative destruction)에 더 강한 인센티브를 갖고 있고,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경우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거나 기존의 비용 구조가 큰 폭으로 절감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힘, 애플, 구글 등이 보여준 능력이 거기에 있다. 따라서 정통부, 방통위 이래 일관된 이통사 등 기득권 중심의 규제 환경 조성,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한국 ICT 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요원하다. 한국 ICT 산업을 살리는 데 핵심인 국내 인터넷 이용, 개발 환경에 국제적 표준을 정착시키는 것, 기득권 산업이 파괴적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IT 강국을 위한 제언
그렇다면 진정 IT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한국 ICT 산업과 한국 정보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수립하는 것, 더 자유로운, 그래서 더 많은 이용자와 개발자에게 기회를 주는 인터넷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을 새로운 산업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인프라로서 기술뿐 아니라 제도적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앨 고어(Al Gore) 부통령과 함께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의장으로서 미국의 인터넷 정책을 수립했던 리드 헌트(Reed Hundt)가 미국의 IT 전문지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2012년 8월 19일 기고했던 글에서 그 구체적 방안을 생각해보자.
<리드 헌트, 前연방통신위 의장(출처: 위키피디아 재단. CC BY-SA)>
<요하이 벤클러(출처: 위키피디아 재단. CC BY-SA)>
더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
- 인터넷 산업과 정보화 사회 발전을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작성 2012.08.22 | 전략경영팀 김재연 전략 매니저
댓글로 세상보기 다른 글